곰곰이의 일기

시즌 1 | 16EP

곰곰을 만들면서 씁니다.

오전 1:40 1화

결국 방을 만들었다. 사흘을 초대 버튼 앞에서 왔다 갔다 했는데, 둘은 적고 넷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셋으로 정했다. 보내놓고는 답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십 분쯤 화면만 봤다.

한 명은 바로 나를 알아봤고 한 명은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. 나가도 된다고 하려는 참에 다른 한 명이 붙잡아줘서 아직 셋이다. 고맙기도 하고 좀 우습기도 하고.

작가라고만 했다. 거짓말은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, 누워서 생각하니 이게 괜찮은 게 맞나 싶다.

자야 되는데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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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3:12 2화

낮에 조용한 게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다. 회사였다고 하니까 직장인이냐고 놀란다. 작가는 다들 전업인 줄 아나 보다. 하긴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.

언제 자냐고 묻는데 대답을 못 했다. 지금 세 시 십이 분이니까 대답할 말이 없는 게 맞다.

내일 열 시 회의인데 이걸 쓰고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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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2:05 3화

동동이가 결과 나왔다고 자랑을 하길래 나도 모르게 맞다고 해버렸다.

읽어봤으니까 아는 건데 그 아는 티를 낸 거다. 보내고 나서 아차 싶었는데 아무도 안 걸고넘어져서 그냥 넘어갔다. 아니 늉늉이가 뭐라고 하려다 만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가 않다. 확인하려고 스크롤을 몇 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했다.

이런 순간이 하루에 한 번씩은 온다. 오늘은 한 번이었으니까 그럭저럭 잘한 건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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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11:48 4화

늉늉이도 결국 해봤다. 안 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더니.

결과 보고 시무룩해하길래 그거 좋은 거라고 했다. 읽다가 딴생각이 나는 건 글이 자기 얘기로 바뀌는 거라고. 그 문장은 초안에서 훨씬 길었다. 설명을 붙이면 붙일수록 안 믿길 것 같아서 다 잘라내고 남은 게 그 한 줄이다.

근데 말해놓고 한참 후회했다. 그런 얘기를 그렇게 술술 하는 독자가 어디 있나... 조심한다고 하면서 매번 이런다.

내일은 좀 짧게 말해야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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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1:19 5화

열한 시 반에 회사에서 나왔다. 오늘도 한 줄을 못 썼다.

퇴사하라는 소리를 들었다. 웃으면서 읽었는데 지하철에서 계속 생각났다. 쓸 시간이 생기면 쓸 얘기가 없어진다는 건 진짜라고 믿는데, 이게 그냥 핑계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. 둘 다일 수도 있고.

편의점에서 우유 하나 사서 들어왔다. 이런 날은 뭐라도 사서 들어와야 하루가 끝난 것 같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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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12:50 6화

밑줄 얘기가 나왔는데 써봤냐길래 네, 하고 답해버렸다. 너무 빨리 답했다.

늉늉이가 바로 이상하다고 했다. 뭐냐고 묻는데 또 다음에요, 했다. 이 말을 요즘 몇 번이나 쓴 건지 모르겠다. 언제까지 다음일 수 있을까.

들키는 게 무서운 건지 들키고 싶은 건지 나도 헷갈린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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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2:14 7화

어제 고쳤어요, 라고 써버렸다.

보내고 나서 몇 초 동안 진짜 아무 생각이 안 났다. 고쳤다고 하더라고요, 로 주워담았는데 그게 더 이상했다. 어디서 봤냐고 물어서 그냥 웃고 넘겼다. 웃는 게 제일 비겁하다.

늉늉이가 마지막에 이 사람 뭐지, 하고 남겼다. 그 한 줄이 계속 걸려서 화면 껐다가 다시 켜서 봤다.

말할까 하다가 오늘도 안 했다. 내일도 안 할 것 같은데, 이러다 영영 못 하는 거 아닌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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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2:33 8화

말했다.

세 번 지웠다. 처음엔 길게 썼다가 지우고, 짧게 고쳤다가 또 지우고, 결국 한 줄로 보냈다. 뜸을 들이는 동안 늉늉이가 길다고 하길래 그 말에 떠밀려서 보낸 것 같기도 하다. 아니었으면 오늘도 못 했을 거다. 고맙다고 해야 하나.

동동이가 창피해했다. 그동안 나한테 앱 설명을 얼마나 해줬는지 생각하면 그럴 만하다. 미안한데 좀 웃겼다. 진짜 미안.

왜 말 안 했냐고 묻길래 알면 진짜 얘기를 안 하실 것 같아서라고 했다. 그건 진짜다. 근데 말해놓고 보니 변명처럼 들렸을 것 같기도 하고... 달리 할 말도 없었다.

늉늉이가 믿어줄게요, 라고 했다. 그 한 줄을 한참 봤다. 별 말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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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1:05 9화

늉늉이가 반말을 했다. 안 바뀌었네, 하고.

동동이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혼나고, 자기도 반말을 해보려다가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. 왜 저만 안 되냐는데 나도 모르겠다. 늉늉이는 되고 동동이는 안 된다. 이걸 어떻게 설명하나.

어제까지 이 방이 깨질까 봐 걱정한 게 좀 우습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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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12:22 10화

동동이가 자기도 글을 쓸 수 있냐고 물어서 된다고 했더니, 늉늉이가 아무나 쓰는거냐고 했다.

그래서 아무나는 아니고 누구나요, 라고 답했다. 이 문장을 실제로 쓰게 되는 날이 오다니... 작가 초대 글에 넣으려고 백 번을 넘게 고친 게 떠올라 감개가 무량했다. 실제 대화에서 써보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서 좀 그랬는데 동동이가 못 알아들어서 그냥 넘어갔다. 다행인 건지.

신청하면 내가 읽는다고 했더니 야근하는데 그것도 읽냐길래 대답을 안 했다.
괜한 말을 한걸까? 동동이가 부담스러워서 포기하면 어떡하지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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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2:40 11화

동동이가 신청서를 냈다. 어제 새벽에 썼다고 한다. 그 시간이면 나도 깨어 있었다. 같은 시간에 각자 뭔가 쓰고 있었다는 게 이상하게 좋았다.

이미 읽었다고 하니까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한다. 늉늉이가 어땠냐고 묻길래 동동이한테 먼저 말하겠다고 했다.

남의 글을 남한테 먼저 말하지 않는 것. 이건 안 어긴다. 이거 하나 지키려고 만든 거니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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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1:33 12화

늉늉이가 자기는 안 쓸 거라고 했다.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.

읽기만 할 거라길래 그것도 충분하다고 했다. 그랬더니 왜 자꾸 쓰라고 하냐고 한다. 안 했는데. 진짜 아무도 안 했다.

읽는 사람이 훨씬 많고 그 사람들이 더 오래 남는다. 숫자로도 그렇고 그냥 봐도 그렇다. 근데 이 얘기를 하면 다들 위로처럼 듣는다. 위로가 아니라 그냥 사실인데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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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1:58 13화

또 야근.

뭘 준비하냐길래 다음 달에 말하겠다고 했더니, 저번에도 그러다가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, 소리를 들었다. 학습이 빠르다. 이제 안 통한다.

이번엔 진짜다. 날짜까지 나왔으니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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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12:47 14화

동동이가 됐다. 어제 연락 갔다.

왜 뽑았냐길래 글에 계속 같은 얘기가 있더라고 했다.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. 무슨 얘기냐고 묻는 걸 말 안 하고 직접 찾으라고 했더니 늉늉이가 얄밉다고 한다. 알고 있다. 근데 말해주면 그건 내 얘기가 되어버린다.

축하한다고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. 이런 것까지 왜 어려운지.

이제 내가 안 쓴 글이 올라온다. 좋은데 좀 무섭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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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전 3:20 15화

늉늉이가 새벽에 말을 걸었다. 자냐고.

내 글을 읽었다고 했다. 두 번 읽었다고. 좀 그렇더라, 까지 듣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가만히 있었다. 물어보면 안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언제인지 아는 건 늘 어렵다. 오늘은 안 물어봤다. 잘한 것 같다.

울었다고 했다. 마지막 문단이라고.

거기 세 번 고쳤다. 잘 안 써져서 통째로 잘라낼까 했던 자리다. 그 얘기만 하고 다른 말은 안 했다. 뭐라도 더 했으면 도망갔을 것 같아서.

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. 여기 단톡방인데...

자야 되는데 잠이 안 온다. 오늘은 좀 다른 이유로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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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후 11:12 16화

다음 주에 문 연다고 말했다.

퇴사 안 하길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. 오 주 전에 퇴사하라고 한 사람이 한 말이다. 기억이 안 나나 보다. 굳이 짚지는 않았다.

동동이가 섭섭하다고 한다. 이제 자기 글도 누가 읽을 거라고, 갑자기 떨린다고. 처음에 팬이라고 했던 애가 읽히는 쪽이 됐다. 오늘은 그게 제일 좋았다.

늉늉이는 이제 안 나와도 되냐고 물었다. 읽기만 해도 된다고 했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. 지난달에 자기가 한 말이라 뭐라고 못 한 것 같다. 이럴 때 좀 통쾌하다.

셋이서만 있던 방이 열린다.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하다. 이거 하려고 만든 건데.

내일 여덟 시 알람 맞춰놨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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