보라색을 좋아요라고 부르지 않았고 산호색을 싫어요라고 부르지 않았다. 끌리는 문장과 저항하는 문장은 좋고 싫은 문장보다 오래 남는다.
같은 문장을 읽고도 한 사람은 붙잡고 한 사람은 밀어낼 수 있다. 어느 쪽이 맞는지 정하는 기능이었다면 색을 두 개 만들 이유가 없었다.
동동이는 “끝까지 가는 게 성실한 줄 알았다”를 좋아했다. 늉늉이는 같은 문장이 싫었다.
나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어느 쪽이었는지 생각했다. 아마 쓰기 전에는 동동이였고, 다 쓰고 나서는 늉늉이였을 것이다.

